옥천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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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옥천 척화비(沃川 斥和碑)는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삼양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척화비입니다.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의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척화비란?척화비는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서양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고, 그들과의 통상 수교를 거부하는 쇄국 정책의 일환으로 전국에 세운 비석입니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겪은 후, 서양 세력에 대한 배척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옥천 척화비의 내용옥천 척화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 큰 글자: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고,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 작은 글자: "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 우리 자손 만대에 경계하노라. 병인년(1866)에 만들고 신미년(1871)에 세우다.
옥천 척화비의 역사
- 건립: 1871년 (신미양요 이후)
- 철거 및 재건: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일본 공사의 요구로 대부분의 척화비가 철거되었으나, 옥천 척화비는 산기슭에 있어 철거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땅에 묻혔다가 다시 세워졌고, 현재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 한국전쟁: 한국전쟁 당시 전투기의 기총 사격으로 인한 총탄 자국이 남아있습니다.
옥천 척화비의 특징 및 위치
-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비갈형 비석입니다.
- 높이 135cm, 폭 45cm, 두께 26cm입니다.
- 옥천 읍내로 들어가는 입구, 서화천과 삼양삼거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조선시대 주요 도로상에 있던 역원인 가화역 터 근처에 있습니다.
보존 상태비석의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지만, 한국전쟁 때 생긴 탄흔이 남아있습니다.
옥천 척화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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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척화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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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정보 | |
이름 | 옥천 척화비 (沃川 斥和碑) |
국가 | 대한민국 충청북도 |
유형 | 기념물 |
지정번호 | 6 |
지정일 | 1976년 12월 21일 |
주소 |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삼양리 산4-4번지 |
수량 | 1기 |
문화재청 ID | 23,0006000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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